1800년대 연방중심과 주 중심 논쟁이 본격화 된다.
1812년 전쟁 때 만들어진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은 1931년 미국 공식 국가로 제정된다.
19세기 초만 해도 미국의 영토는 현재 미국의 1/3 정도의 영토만 가지고 있었다.
동쪽 13개 주 부터 시작해서 점점 서쪽으로 진출 남북 전쟁 직전 오늘날의 미국 영토를 완성하게 된다.
미국 역사에서 전쟁 도서 출판 수를 보면 1위 남북 전쟁 , 2위 2차대전, 3위 베트남 전쟁 이다.
남북전쟁은 오늘의 미국을 만든 근원 중 하나이다.
남북의 문제는 오늘날 까지 이어진다.
남북전쟁은 아직도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이다.
또한 그 당시 미국과 오늘날의 미국을 이해하는 데 배경이 된 전쟁이다.
미국 중앙의 루이지애나는 원래 스페인 땅이였으나 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 땅이 된다.
여기에 루이지애나 (자칭 태양왕 루이 14세의 땅 이라는 뜻) 라는 이름을 붙인다.
미국은 뉴올리언스 기항권과 미시시피강 운항권이 필요했다.
북부에서 생산한 물자를 남부로 유통시키기 위해서이다. 당시는 수로가 상당히 중요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사이가 좋지 않아서 미국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는 미국을 지원했다.
미국과 프랑스는 사이가 좋았다.
미국은 프랑스에 사절단을 보내 이 지역을 매입하려 한다.
프랑스는 흔쾌히 수락하고 아예 루이지애나 땅 전체를 가져가라고 한다.
현재 가치로 4600억원 정도에 저 큰 땅을 미국은 프랑스로 부터 사버린다.
당시 미국 재정으로는 많은 돈이어서 유럽 은행 2곳에서 연이자 6% 대출까지 받는다.
미국은 20여년에 걸쳐 이 부채를 갚는다.
이 때 원래는 의회 비준을 받아야 하나 미국 정부는 그냥 도장부터 찍어버린다.
나폴레옹은 영국주도 연합군과 전투를 하느라 막대한 군비가 필요했다.
나폴레옹의 계획은 아이티를 교두보 삼아 루이지애나로 가려 했다.
아이티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프랑스는 이를 진압하려 군대를 파견한다.
아이티에 도착한 프랑스군은 황열병에 걸리고 여기서 병력의 2/3을 잃어 버린다.
더군다나 영국의 해상봉쇄로 추가 파병마저 어려워 진다.
파병도 어렵고 관리 자체도 어려워지고 전쟁하느라 돈도 없어 나폴레옹은 미국에게 루이지애나 땅을 돈 받고 판것 이다.
더구나 여기는 당시 미개척 땅이였고 척박했다. 미국은 개이득을 보았다.
플로리다 지역은 스페인령이였다.
미국이 점점 팽창하여 플로리다 원주민 세미놀족과 미국인 충돌이 발생한다.
미국은 이를 구실로 스페인 땅에 군대를 파견한다.
이 시기 스페인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칠레,멕시코,아르헨티나등 중남미 식민지가 독립을 계속하고 있었다.
관리가 어려워진 스페인은 미국에 플로리다를 매각한다.
지금이야 플로리다가 오렌지로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늪지대로 악어도 득실득실한 좋지않은 땅이였다.
미국 내 비난 여론이 쇄도한다.
미국은 점점 세력을 확장하여 텍사스 땅에 미국인이 정착하게 된다.
처음에 멕시코는 이들을 지원했고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수가 많아져 멕시코 정부와 갈등을 빗기 시작한다.
멕시코는 통제와 추방을 시도하고 거주하던 미국인은 독립선언을 하고 텍사스 공화국을 세운다.
멕시코는 스페인 독립 후 내전으로 어려웠지만 멕시코 대통령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텍사스로 간다.
민병대 수준이였던 미국인 200여명이 알라모 요새에서 저항하지만 13일 후 함락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멕시코 미국인들은 알라모를 기억하자며 사기가 올라간다. 샌재신토 전투가 벌어진다.
텍사스 민병대를 지휘하던 사람은 샘 휴스턴이였다.
그는 지형지물을 잘 활욯해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이 공격으로 멕시코군 650여명이 전사하고 300여명이 포로로 잡힌다.
문제는 이 때 대통령이 포로가 된다.
다급해진 대통령은 벨라스코 조약을 체결하고 텍사스 공화국 독립을 인정한다.
이 소식을 들은 멕시코 의회는 조약 무효를 주장하며 대통령을 손절한다.
원래 이 조약에는 텍사스 공화국은 미연방에 가입 안하는 조건이 들어있으나 1845년 미국은 여기를 28번째 주로 병합한다. 멕시코는 거세게 반발하고 외교관계를 끊는다.
미국은 남은 아메리카 대륙을 먹기 위해 텍사스 멕시코 국경 근처에 분란을 자꾸 만든다.
무력 충돌이 생기고 미국은 이를 구실로 멕시코에 선전포고한다.
1846년 가을에 미군은 캘리포이아 일대를 점령한다.
멕시코는 아직 신생 국가 였고 미국은 뛰어난 무기와 조직화된 전투력을 갖추고 있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투력 열세에도 멕시코는 항복하지 않는다. 넓은 영토가 있기 때문에 게릴라전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육군 사령관 윈필드 스콧(훗날 북부군 총사령관) 이 허를 찌르는 작전을 계획한다.
위험을 무릎쓰고 베라크루즈 상륙 후 멕시코 시티로 진격하여 수도를 함락시킨다.
결국 멕시코는 1847년 9월 항복한다. 그리고 북미지역의 영토 전체를 미국에게 헐 값에 강제 매각당한다.
훗날 멕시코는 치욕스런 역사를 강조하게 되고 제1차대전 때 치머만 전보 사건이 발생한다.
독일이 보낸 전문으로 미국이 참전하면 뒤에서 미국을 치라는 전보였다.
이 일은 미국의 1차대전 참전의 하나의 구실이 된다.
멕시코는 힘없는 국가가 영토를 강탈당했다고 생각하고 미국은 텍사스 공화국 탄생시 희생된 알라모 요새에서 죽음으로서 항전한 민병대를 기억하라며 이를 기리게 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멕시코 독재자 산타 안나의 핍박에서 해방시켰다는 논리를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