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 이전에는 영국인이 주로 이주했다 거의 200만 정도가 이주했는데 90%정도가 영국인이였다.
그와 동시에 네덜란드 이민자가 들어오고 영국인과 혼합되어 뉴욕에 정착한다.
그 다음 유럽에서 살기 어려워진 유럽인들 스코틀랜드 및 북아일랜드 영국 퀘이커 교도들이 이주한다.
30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독일인도 이주 한다.
이들은 주로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하는데 이 지역은 중유럽계 인구가 많다.
스코틀랜드인과 북아일랜드인들은 농사지을 땅을 찾아 내륙으로 들어간다.
미국 남부는 성격이 좀다르다.
이민 초기는 영국인이 많이 이민왔으나 이 지역은 유럽 기후와 달랐다
이 지역은 하인이나 노예를 부릴 수 있는 농장주들이 정착한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사업가가 들어간다.
당연히 간섭을 싫어하고 비연방파가 된다.
1840년대에 대기근을 피해 엄청난 수의 아일랜드인이 들어온다.
거의 200만 정도였다.
1850년대에는 독일인이 대거 이주한다.
이 당시 유럽은 자유주의 운동이 벌어지고 이들 운동은 당시 국가의 탄압을 받는다.
이 핍박을 피해 자유주의자들이 대거 이주한다.
이러면서 뉴욕의 아일랜드계와 영국계의 갈등이 심화된다.
이 갈등을 그린 영화가[갱스 오브 뉴욕] 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민을 더 받지 말자는 미국토착민당이 생긴다
뉴욕 양키들이 의미하는 것은 네덜란드의 가장 흔한 이름이 얀 카스 였다.
이를 미국 발음으로 양키라고 한다.
뉴욕에 사는 네덜란드인을 니커보커라 한다 줄여서 닉스 라고 한다.
독일 자유주의자들은 중부에 주로 정착한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노예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일랜드인들은 주로 하층민으로 전락한다.
유럽이민자들이 점점증가하고 이들이 서로 갈등을 시작한다.
1840년대 백인 여성 1인당 6.14명을 출산한다.
이민자들은 황무지 땅을 개척하기 위해 모험정신을 발휘하여 새로운 땅을 간다.
정부에서 선발대를 파견해 토지를 나눈 후 이민자에게 영토를 배분하기도 했다.
이거 다 세금 걷기 위해서이다.
이 당시 영국은 노예제에 논란이 있었고 1833년 공식적으로 폐지한다.
북부 지역은 영국계 이민자들은 노예제도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미국 독립선언문에 나와 있듯이 자유를 추구하는 미국 이념과 배치된다.
연방 설립 당시는 노예제가 그리 큰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세금 부과와 하원 의석수 였다.
노예를 인구수에 카운트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노예 5명을 자유민 3명 으로 간주 하는 것이다.
이러면 남과 북 투표 인구 수가 비슷해진다.
메이슨 딕슨 라인이 생긴다
이 라인은 메릴랜드와 펜실베니아 사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토지 경계를 측량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선이 자유주와 노예주를 가르는 선의 시발점이 된다.
1787년 초대 국무 장관 토머스 재퍼슨은 북서부 조례를 재정 새로 편입된 주를 자유주로 하기로 한다.
북부와 남부를 오하이오 강이 가로 막고 있어서 지역적으로 남북이 분리된다.
자유주와 노예주 수는 상하원의원 과 대통령 선거 인단에 영향을 받는다.
미국 영토가 점점 거지면서 새로 편입되는 주들이 자유주가 될지 노예주가 될지 중요해진다
1854년 미국의 공화당이 창당되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 체제가 본격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