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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AD_1500_1799

마리 앙투아네트 2부

by senamu 2024.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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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는 국가 재정난으로 혹독한 세금을 매기기 시작한다. 각종 세금이 붙고 인두세라고 해서 사람 머리 수대로 세금을 거두기도 한다. 이런 세금은 평민에게만 해당되고 귀족은 면제였다. 특히 동물을 사냥하는 권리는 귀족만 가지고 있었는데 반란이 일어날 때 농민도 사냥과 낚시를 하게 해달라는 조항은 항상 끼어있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미국 독립 전쟁이 1775년 부터 1783년 까지 일어난다.숙적 영국이 미국과 붙자 프랑스는 미국의 지원을 결정한다. 세금을 쏟아 붙는다. 여기에 안타깝게 앙투아네트의 입김도 작용한다. 세수가 부족하자 루이 16세는 삼부회를 소집한다. 프랑스는 3개 계급이 있었다. 성직자,귀족,평민이였다. 평민이 귀족과 성직자를 힘겹게 엎고 가는 구조였다. 삼부회 의사결정은 문제가 있었다. 쪽수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에 1표씩 준 건이다. 귀족과 성직자가 반대하면 평민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평민들은 각종 세금과 지도층의 사치를 보며 분노하고 국민의회를 만들어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 한다. 머릿수 대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신분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테니스 코트장으로 가서 이런 뜻을 선언해버린다. 루이 16세는 가만두면 왕권이 위험하다며 군대를 동원하여 탄압한다.점점 서민들은 분노하게 된다.1789년 7월 14일 화가난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다. 여기는 원래 요새로 쓰이다가 계몽사상가나 정치범을 가두는 감옥으로 사용된 곳이였다.절대왕정의 상징이였다. 게다가 여기에는 무기와 탄약이 가득 있었다. 서민들이 무장할 수 있는 것이였다. 후에 이 바스티유 감옥을 손으로 뜯어서 지금의 프랑스 콩코르드 다리(혁명의 다리)를 만든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 성공하고 거기에는 죄수 7명이 있었다. 보니까 다 잡법이였고 정신이상자 2명도 끼어있었다. 금서도 쏟아진다. 사상서적이나 왕정에 위협이 될 만한 사상이 담긴 서적 그리고 음란한 서적들도 대량 나온다. 당시 서민층에는 귀족들 포르노 팸플릿이 난무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표적이 된다. 근친상간은 물론 동성애까지 즐겼다며 여러 이상한 잡지가 나돌게 된다. 혁명세력은 이를 부추긴다. 앙투아네트를 나체로 만든 그림을 배포한다. 벗겨놓으면 왕비나 귀족이나 평등하다는 것이다.앙투아네트를 비난하는 노래도 확 퍼진다. 앙투아네트는 점점 악마화 되게 된다. 이런 혁명 장소인 바스티유 주변은 오늘날 우리나라 홍대와 같이 핫플레이스라고 한다. 여기에 210년 전통의 드보브에 갈레 라는 초콜릿 가게가 유명하다고 한다. 앙투아네트가 약이 써서 못 먹어 여기 초콜릿과 섞어서 약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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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여성들도 일어난다. 주식인 빵값이 하루 일당을 넘어 주부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여성들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진군한다. 왕정은 무너지고 루이 16세 일가족은 튈르리 궁으로 압송된다. 앙투아네트는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며 루이 16세에게 도망을 건의한다. 여기에 페르센이라는 인물이 적극 돕는다. 베르사유의 장미에 나왔던 남주인공이라고 한다. 아마 내연 관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루이16세와 그의 가족들은 야음을 틈타 도망간다. 그런데 탈출 도중 어느 마을에 도달하게 되는데 여기 마을 우체국장이 수상한 마차를 보게 된다. 어떤 하인이 마차 안의 사람을 극진히 대접한 것을 본 것이다. 보니까 지폐에 루이 16세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신고한다. 혁명 세력은 왕과 그의 가족을 파리로 압송한다.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다니 국민들은 더욱 분노한다. 혁명 세력인 국민의회는 압송 당시 항의의 표시로 침묵 속에 그들을 맞이하라고 명을 내린다. 실제로 모인 군중들은 침묵으로 왕가의 행렬을 지켜본다.

  국민의회는 왕의 죄를 반역죄로 다스리려 했지만 별 명분을 못 찾는다.왕의 자리에 물러났으면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때 나선 사람이 로베스피에르 였다. 혁명 완성을 위해 왕을 처형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는 콩고르드 광장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이 단두대는 루이 16세가 기존 단두대가 목이 잘 안 잘리자 개선한 것이였다. 만들기 좋아한 왕은 자신이 개선한 단두대로 목이 잘리게 된다.군중들은 왕의 처형 때 한 사람씩 손수건을 든다. 바로 왕의 피를 받기 위해서였다. 당시 사람들은 사형수의 피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고 더군다나 왕의 피라니 사람들이 환장을 한다.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손수건에 피를 적셔주는 사람도 등장한다. 이제 앙투아네트 차례였다. 그동안의 부풀려지고 거짓된 소문이 모두 죄가 되어버린다. 특히 아들 루이 17세와 근친상간했다는 누명은 앙투아네트로써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누명이였다.그녀의 호소는 통하기도 했으나 결론은 사형이였다. 앙투아네트 아들도 주변의 위협으로 거짓 자백을 한다. 이 점이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사형 전날 앙투아네트 머리가 하얗게 됬다는 설이 있다. 이런 일화로 프랑스에서는 머리가 하얗게 되서 아무 생각도 안난다를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머리 잘 잘리라고 머리카락도 단발머리로 한다. 1793년 10월 16일 앙투아네트는 타국 단두대에서 죽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를 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녀에게 씌워진 죄목은 군중에 의해 부풀리고 선입견에 씌워진 억울한 것이였다.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집사가 죽자 그의 자식들을 거두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였다고 전해진다. 앙투아네트 죽음으로 프랑스 혁명은 일단락 된다.프랑스 혁명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프랑스 국기에 이런 정신이 들어간다. 파랑은 자유,하얀색은 평등,빨강은 박애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전 영국 명예혁명이 귀족의 권익을 추구하고 미국 독립 혁명이 자신들 나라의 독립만이였다면 프랑스 혁명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담은 사건이였다. 이러한 정신으로 UN 헌장에 이 내용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런 평등 사상은 당시에는 남자에게만 해당되었다. 프랑스 혁명에 여성들 공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만 쌓고 열매는 따지 못한다. 아마 이러한 여성을 낮게 보는 인식과 맞물려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녀 사냥을 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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