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는 독일 침공에 대비해 마지노선을 만들게 된다.마지노선은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 이름 딴 요새였다.마지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요새 완공을 보지 못하고 1932년에 숨진다.그를 기려 프랑스는 요새 라인 이름을 마지노선으로 명명하게 된다.1차대전 말미 포슈장군은 독일이 지금은 실패했지만 다시 프랑스로 쳐들어 올 것을 예견한다.그 시점을 20년 후 쯤으로 예상한다.이 생각은 모든 프랑스 장군들도 마찬가지로 공유하고 있었다.1차대전으로 프랑스가 승리는 했으나 상처는 깊었다.많은 군인이 죽으면서 병력이 모이지 않게 된다.출산률도 바닥을 치고 있었다.독일을 막으려면 적은 병력으로 운용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조프르는 대규모 요새를 지어보자고 주장하고 페탱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며 요새를 만드는 것에 더해 이들 요새를 선으로 이어 좀 더 강력한 방어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마지노선은 독일 침공만 염두에 둔 것이 아니였다.파시스트 국가였던 이탈리아도 프랑스를 노릴 수 있다며 여기에도 단단한 방어 라인을 구축하게 된다.프랑스는 방어 중요도를 4등급으로 나누어 관리하게 된다.가장 중요한 곳에는 콘크리트를 3.5m 까지 바르면서 방어력을 높이게 된다.지하에도 요새를 구축한다.지하에 만들어진 횡으로 난 길을 통해 중요 거점으로 갈 수 있게 만든다.전기기차도 만들고 후방에 병력 투입을 용이하게 하기위해 종으로도 길을 만들게 된다.당시 첨단 기술은 모두 때려 박게 된다.병사들이 햇빛을 못 볼 것을 염려해 썬텐 시설까지 갖추는 등 하나의 도시처럼 만들게 된다.










독일은 마지노선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프랑스가 마지노선 건설 인력이 부족하자 외국인을 받게 된다.독일인도 건설 현장에 투입된다.인력부족도 부족이지만 돈도 원래 비용보다 갑절이 들어가게 된다.원래 30억 프랑(한국돈 20조)면 될 줄 알았으나 50억 프랑까지 비용이 치솟게 된다.이 비용은 프랑스 1년 전체 국방예산의 1/3이였다.이게 낭비냐 생각하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많은 나라들이 적의 빠른 진격을 막기위해 국경지대에 마지노선 같은 요새라인을 구축하고 있었다.이 개념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프랑스는 여기에 과도할 정도의 콘크리트까지 덮으며 방어선을 강화했다.아르덴숲은 비워둔다.돈이 너무 많이 들고 기계화부대가 이리로 들어 올 수 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벨기에 쪽은 뻥 뚫어 놓게 된다.독일보고 이리로 침공하라고 길을 터 준 것이다.이쪽은 1차 대전에서 독일이 고전한 지역이였다.그 생각이 프랑스군에 있었다.게다가 1차대전 피해를 많이 본 프랑스는 전선이 자국보다는 타국에서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프랑스는 독일을 축차적으로 막을 생각으로 자국에서 더 멀리 떨어진 딜방어선을 만들게 된다.독일 침투를 시뮬레이션 하면서 이쪽을 강화한다.네덜란드와 벨기에도 위기감을 느끼며 이에 동참하고 있었다.베네룩스 3국(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은 군사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다.독일 아니면 영국과 프랑스에 편을 서야 하는데 이들은 영국과 프랑스에 베팅하게 된다.독일은 1차대전 때 벨기에를 박살냈기 때문에 독일에 붙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지도층도 위기감을 느낀다.왕국 중심의 나라인데 파시스트인 히틀러가 지도층을 전복하려할 것은 뻔했다.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점점 세력을 키우며 영토를 늘리자 이들 나라에 요새 구축하라고 막대한 지원을 해주게 된다.벨기에는 기뻐한다.딜방어선 안에 들어가면 자신들의 주요 도시를 독일 침공으로 부터 지킬 수 있는 것이였다.











프랑스는 요새를 강화하고 기갑 전력에도 상당한 투자를 한다.1936년 좌파 인민정부가 들어서고 이 정부도 국방력을 그대로 강화하기로 한다.전차의 힘을 기존 3배로 늘리겠다며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붙게 된다.전차 3200여대를 확충하게 된다.물리적으로 프랑스군은 강해 보였다.하지만 내부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군기가 빠져 있었다.장교들은 사복차림으로 다녔고 금요일에는 부대를 비우고 마을 주변에서 놀다가 월요일에 복귀하는 상황이 펼쳐진다.장교가 이러니 일반 병사도 경계감을 풀고 있었다.
















프랑스 사회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노동자들이 걸핏하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며 파업을 일삼았다.군수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 정도였다.인구 부족이라는 고질적 문제도 부딪힌다.병력 자원이 없다보니 부적격자까지 군에 들어가게 된다.장교들은 제발 사고만 치지 말아다오 하면서 병사들을 통제하고 있었다.독일은 프랑스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영국군이 프랑스군보다 돈을 훨씬 많이 받는다며 이들을 갈라치기 한다.프랑스군은 전투 훈련보다 삽질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프랑스는 투자할 때가 너무 많았다.해외 식민지를 지키려면 해군 강화도 필요했다.이탈리아가 지중해에서 점점 힘을 키우니 이를 견제해야 했다.요새구축,해군강화에 돈이 많이 들다보니 공군 투자에는 소흘해 진다.포병도 낙후된다.1차대전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었다.독일은 포구경을 키우며 화력이 엄청 강화됬는데 프랑스는 제자리였다.


독일 역시 낙관적 기류는 아니였다.1차대전 당시에는 프랑스하고 전쟁한다니까 온 국민이 열광했다.거기에 히틀러도 끼어 있었다.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1차대전은 참화 그 자체 였다.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좀 살만하다 싶어졌는데 다시 자기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꺼림칙해 한다.폴란드와의 전쟁은 뭐 그럴만 했다.거기는 원래 우리 땅이였으니까 이해를 하는 분위기였다.하지만 프랑스를 공격한다고 하니 사회분위기는 냉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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